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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전으로부터 온 편지


한국 최초의 독신여성단체 <한국 여성 한마음회>의 회장 '김애순' 씨를 만나다



언니네트워크 액션+공감팀 (정리 : 몽MONG, feeltheaction@unninetwork.net)




믿건대 먼저 밟으시는 언니들이여!
푹푹 디디어서 뚜렷이 발자취를 내어주시오.
좀체름하게 또 눈이 오더라도 그 발자국의 윤곽이나 남아 있도록.

- 잡감, 나혜석


언니네트워크에서 비혼 운동을 해 오면서, 그리고 시집 안가고 살았다는 누군가의 '이모', '고모'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예전에도 결혼 하지 않고 산 여자들이 꽤 있었을 텐데… 그 여자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지금은 어디에서 뭘 할까?'하는 생각이 들곤 했다. '여성사', '역할모델'이라는 말을 들먹이지 않아도 매번 맨땅에 헤딩하는 것처럼 느껴질 때, 내가 떠올릴 수 있는 누군가가 '있는 것'과 '없는 것'은 하늘과 땅 차이라는 걸, 우리는 너무 잘 안다. 훨씬 이전에 비슷한 열망을 가지며 살아갔던 여성들의 발자취를 어떻게 찾을 수 있을까? 그 이야기들을, 지금은 어떻게 만날 수 있을까?

시작은 (정말 우습게도!) 한 검색사이트에서 '독신'이라는 키워드를 치면서 시작되었다.

 



'독신모임 <한국 여성 한마음회> 15일 창립총회… 귄익‧친목 모도'(동아일보, 1990년 12월 14일)
위 사진은 1991년 3월에 있었던 <한국 여성 한마음회> 3회 회원연수


"혼자 사는 여성이 늘고 있으므로 그들에게 불리한 현행 세제나 아파트 분양권 같은 당면문제 해결에 힘을 모으고 신체적, 정신적 고통을 당할 때 어려움을 함께 나누기 위해 단체를 창립한다."


'우아!' 2011년의 이야기가 아니다. 무려 20년 전, 한국 최초의 독신여성단체<한국 여성 한마음회>(이하 <한마음회>)라는 단체가 밝힌 창립 취지다. 이미 20여년 전에 독신여성들로만 구성된 단체가 있었다니! 그때부터 <한마음회>에서 활동한 분을 찾기 위한 기나긴 과정이 시작되었다. 그렇게 어언 한 달이 흘러갈 무렵… 드디어! 온갖 우여곡절 끝에 <한마음회>를 만든 김애순 씨를 언니네트워크 사무실에서 만나게 되었다. (감격의 눈물…)



액션+공감 : 정말 얼마나 수소문했었는지…. (김애순씨를 만나기 위한 처철한 '스토킹' 과정이 있었다) 이렇게 뵐 수 있어서 정말 다행이예요!

김애순 씨 : 그러게요, 많이 고생하셨더라고요.

액션+공감 : 제가 맨 처음에 '독신'으로 검색을 하다가 독신여성단체가 있다는 걸 알게 됐거든요. 최근에 포털에 새로운 기능이 생겼는데, 오래된 기사를 그대로 볼 수 있게 온라인 아카이브로 구축해놨어요. 그 전엔 알 수가 없었는데, 그러다 최근에 90년도에 난 <한마음회> 기사를 보게 되었거든요. 언니네트워크에서는 '미혼'(未婚)이 아니라 '비혼'(非婚)이라고 이야기하는데, '아, 그때는 비혼이라는 말이 없었으니까 전에는 '독신'이나 '싱글'이라고 했겠구나' 생각했어요.

김애순 씨 : 지금도 '비혼'이라고 하면 못 알아들어요. 한자를 봐야 알지. ('비혼'이라는 단어를 그 전에 들어보신 적이 있냐고 묻자 없다고 하신다)



독신여성들의 만남, 첫 단추를 꿰다

액션+공감 : <한마음회> 기사를 보고 '너무 신기하다, 예전에 있었는데 왜 몰랐을까' 이러면서 찾아봐야겠다고 생각했어요. 1990년도 기사를 보니까, 독신여성 92명 정도가 모여서 창립을 했더라구요. 그 때가 90년도이고 20년 전인데, 92명이면 적은 숫자는 아니잖아요.

김애순 씨 : 그렇죠.


액션+공감 : 그 독신여성들은 어떻게 모이시게 된 거예요? 그게 너무 궁금하더라고요.

김애순 씨 : 아, 어떻게 모이게 됐느냐? 그게 참 궁금할 거예요. (웃음) 제가 '한국부인회'에서 일할 당시에 여성단체 출입하는 기자들을 많이 알았어요. 그 당시 한 분이 여성단체 출입하는 문화부 기자들에게 연락을 해줘서 제가 인터뷰를 했죠. 그래서 점심 같이 하면서 독신여성단체를 발족한다, 목적은 이렇고 대상은 이렇다, 이야기를 하고 그 분들이 신문에 내줬어요. 그래서 기사로 먼저 나간 거죠. 최초의 이색적인 단체잖아요. 그러니까 호기심으로 기사를 많이 써줬죠.

액션+공감 : 그 때도 언론들의 호기심이 있었구나…. 맨 처음에 독신 여성들을 위한 강좌(여성신문사 문화교육원 개최)에 참여한 열다섯 명 정도가 주축이 되었다고 하던데요.

김애순 씨 : 그게 <한마음회>의 모체가 됐죠. 그 이후에 서로 만나기도 하고 밥도 같이 먹으면서 독신의 삶에 대한 걸 나누다 보니까…. 그래서 '그러면 우리가 단체를 하나 만들어보자' 제가 주장을 했죠, 또. (웃음) 그래서 결혼 안 한 여성, 독신 여성들의 권익도 보호하고, 우리의 자질 향상도 하고, 사회적으로 할 일도 많으니까. 그 이후에 몇 번씩 이야기도 하고 토론도 해서, 1990년 12월 7일에 창립을 한 거죠. (※ 사진 : 창립총회 준비모임을 갖고 있는 <한마음회> 회원들. 경향신문, 1990년 12월 14일자)

액션+공감 : 아직도 기억하고 계시네요. 그러면 창립하실 때 90명 다 모이셨어요?

김애순 씨 : 정확히 92명. 우리 어떨 때는 막 인원을 불리고 그러잖아요, 90명이면 200명 왔다 그러고. (웃음) 전 그런 거 싫어해요. 정직하게. 결혼 안 한 사람들이 정직히 살아야지. (맞아요 ㅎㅎㅎ) 그래서 92명이 모여서 창립을 했고, 입회원서를 받은 사람이 390여명이었어요.

액션+공감 : 입회원서가 있었어요?

김애순 씨 : 예. 입회서. 그런데 또 실제로… 나중에 별로 마음도 없고 그러면 안 나오는 사람도 있었고. (웃음)

액션+공감 : 당시 신문기사를 보면 입회자격이 있더라구요. '입회조건은 고졸 이상 20세 이상의 독신여성이면 전국에서 누구나 가입할 수 있고 결혼을 하면 회원자격이 박탈된다!' (웃음)

김애순 씨 : 결혼 한 사람을 누가 끼워줘요~ (웃음)

액션+공감 : 그럼 맨 처음에 모인 92명 중에서 결혼 하신 분이 있으면, 그분은….

김애순 씨 : 안 나오죠. 자기들이 스스로 안 나왔어요.

액션+공감 : 창립회원인 92명에서 회원 수가 점점 늘어났나요?

김애순 씨 : 그렇죠. 창립총회 참석한 사람들이 92명이고, 창립총회 끝나고 나서 기사가 또 나가고 그러잖아요. 여기저기서 연락이 계속 많이 왔어요. 대전에서도 오고, 부산에서도 오고. 수원에서도 오고. 우리가 한 달에 한 번씩 독신을 위한 교양강좌를 했었거든요. 각개 분야에 유명한 분 모시고 강좌를 할 때에는 지방에서도 오고 그랬어요.

액션+공감 : <한마음회> 회원으로 활동하시는 분들은 대개 서울 지역에 사시는 분들이었겠네요.

김애순 씨 : 그렇죠. 대부분이 서울경기 지역이었죠.

액션+공감 : 기사가 나간 이후에 독신 여성들의 경우에는 나랑 같은 사람들이 있다고 하니까 궁금해서, 함께 하고 싶어서 전화하신 분들일 텐데. 혹시 창립하실 때 다른 반응들은 없었나요? 90년도에 결혼 안 한 여자라고 하면 좋지 않게 바라보는 사회적 시선이 지금보다 훨씬 더 심했을 것 같은데….

김애순 씨 : 그렇죠~ 제가 독신에 관한 책 <독신, 그 무한한 자유>를 처음 낸 게 1994년도였는데, 어떤 분은 이걸 사다 읽으면서 집에서 이불을 둘러쓰고 읽었대요, 자기 부모들이 볼까 싶어서. 그런 사람도 있었어요.

액션+공감 : 아~ 이 책을 보면 너도 결혼안하고 독신으로 살 거냐고 물어볼까봐서요?

김애순 씨 : 응, 부모들이 뭐라 할까 싶어서. 이걸 또 딱 감추고 보고 그랬대요.

액션+공감 : 우와… 진짜… (할 말을 잃었슴미다) 저희가 정말 재밌었던 게, <한마음회>가 만들어진 게 거의 20년 전이잖아요. 그런데 지금 언니네트워크가 비혼이 겪는 차별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내용과, <한마음회>에서 그 당시에 사회에 문제제기하면서 이야기했던 내용이 그렇게 크게 다르지가 않은 거예요. 세금 제도, 주택, 독신에 대한 사회적 인식과 압박….

김애순 씨 : 그렇죠. 그래도 지금은 훨씬 낫죠. 지금은 결혼 적령의 40%가 결혼 않겠다고 그런다고 하잖아요. 그 당시만 해도, <한마음회> 회원들도 결혼하지 않고 혼자 살겠다는 이야기를 자기 부모들한테나 주위 사람들한테 떳떳하게 이야기하고 그렇게는 못 했다는 사람도 많았어요. 저 같은 사람은 뭐 아주 대한민국에서 내놓은 사람이니까… (웃음)


부모님이 집에 찾아오실 때마다 책장에 꽃혀 있는 온갖 여성학 책들이 살짝 신경쓰인다는 (그래서 자신의 사상을 들킬 수 밖에 없다는) 이야기를 지금도 친구들과 종종 나누긴 하지만… '독신'에 관한 책이 마치 금서처럼 느껴지는 그 당시의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한마음회>의 첫 시작에 모인 92명의 여성들의 마음이, 그 열기가 어땠을지 떠올려보게 된다. '독신'을 생각하는 여성들이 지금보다 훨씬 더 소수일 때, 그리고 '결혼'에 대한 개인적, 사회적 압력이 더 거세었을 때, 그 여성들에게 <한마음회>야 말로 자신들의 이야기를 터 놓고 이야기할 수 있는 공간이었을 터!

그런데 이미 20년 전에! '더블생활자(지긋지긋한 천국)'보다 '싱글생활자(심심한 천국)'가 낫다고 생각한 여성들은 누구였을까? <한마음회>를 맨 처음 제안한 김애순씨의 삶과 개인적인 맥락이 궁금해졌다.




<한마음회>를 만들기 전, 개인적인 이야기

액션+공감 : 지금도 말씀하시는 거 들으면 굉장히 열정적으로 말씀하시고, 딱딱 설명하시고, 성격이 되게 꼿꼿하실 것 같아요. (ㅎㅎㅎ) 여러 분야, 여러 단체에서 활동도 하시고… 굉장한 '맹렬'여성이었을 것 같은데.

김애순 씨 : 맹렬여성이라기 보다…. 제가 대학교 1학년 때 4·19가 났어요. (헉…!) 제가 대학교 들어간 1960년에 4·19가 나고, 2학년 때 5·16 군사정변이 나고. 새벽에 막 총소리가 나서 밖에 나가서 보고….

액션+공감 : 진짜… 시대가… (웃음)

김애순 씨 : 그러다 내가 대학교 1학년 때 학생운동 하던 전국학생연맹이라는 단체에 들어가고 2학년 때 여성부장을 했어요. (웃음)

액션+공감 : 2학년이신데요?!

김애순 씨 : 2학년 때인데, 위원장이 4학년 선배였어요. 2학년 되니까 자기는 뭐 위원장 하니까 나보고 여성부장 하라고 해가지고 멋도 모르고 한 거예요. (웃음) 그 당시 우리가 남북학생회담을 하자 그런 이야기를 했었거든요. 평화통일 해야 한다, 그럼 학생들이 먼저 회담하자는 구상을 하고. 그런데 5·16이 팍 나니까, 5월 18일 날 잡혀서 들어갔죠.

액션+공감 : 그럼 학생운동 시작하고 여성부장을 맡게 된 이후로 여성 쪽에 관심가지고 활동하시게 된 건가요?

김애순 씨 : 그때는 본격적으로 할 겨를도 없었죠. 그때는 여성운동이란 건…. 다른 것도 못하는데, 감히 여성운동을 어디다 대겠어요. (웃음) 공무원을 하다가 김윤덕 전 국회의원 비서관을 했고, 한국여성유권자연맹, 한국간호조무사협회, 한국부인회, 한국장애인단체총연합회 등에서 일했었죠.

액션+공감 : 그렇게 여러 가지 일을 하셨는데, 그 시간 개인적으로 집안에서 결혼하라고 강요하거나 이러지는 않으셨어요?

김애순 씨 : 저는 부모님이… 아버지는 제가 초등학교 때, 6.25때 학살당하셨고. 어머니는 제가 하는 일에 대해서 항상 믿으시니까…. '사람 인 자를 봐라. 둘이 딱 의지하고 있지 않느냐. 늙어서 어떻게 할래…' 그 말밖에 안하셨어요. 믿으니까, 제가 하는 일에 대해서 하지 말라고 하지는 않으셨어요. 제 5살 위의 언니도 주위 사람들이 있으면 '시집가라' 하기는 했지만, 언니도 몇 번에 한 번이고. 집안에서 그런 사람이 별로 없었어요. 제가 6남매인데. 오빠도 그렇고, 엄마도 그렇고. 결혼에 대해서 '어떻게 할래' 하면 '그냥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라고 했거든요. 난 그 전부터 시집 안 간다고 했어요.

액션+공감 : 언제부터 그렇게 생각하셨어요? 궁금해요, 어느 시기부터….

김애순 씨 : 내가… (한참 고심) 중학교 때?

액션+공감 : 아, 중학교 때부터요? (ㅋㅋㅋ) 왜 그런 생각 하셨어요?!

김애순 씨 : 학생 때 <검사와 여변호사>라는 영화가 나왔어요. (가난한 여자 죄수들을 위해 무료로 변론을 해 주는 여변호사가 나온다고 한다) 그 당시에는 활동영화라고 했어요. 그 영화를 보고 '내가 이 다음에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서 법관이 되어야겠다' 생각했어요. 그래서 공무원 생활을 하면서도 하숙하면서 고시 공부를 했거든요. 결혼 안하겠다는 이야기는 중학교 때부터 했어요. 왜냐하면 내가 하고 싶은 일을 못하니까. (아…!)

액션+공감 : 독신이라는 이유로, 결혼을 안했다는 이유로 받았던 시선 같은 것들은…

김애순 씨 : 내가 과거에 공무원 할 때에도, 그… 항상 난 그런 생각을 하고 살았어요. '아~ 저 여자 어떤 어떤 여자' 이런 험담을 안 듣기 위해서 굉장히 조심을 해야 했어요. 품행 면에서는 너무 조심을 했고. 전라도에 순창 군청에서 근무할 때가 있었는데. 순창 군청에 갔더니 거기 총각이 엄청 드세니까, 외지에서 여자가 들어오면 기어코 꼬셔요. '저 여자 내가 기어코…' 하면서. 학교 선생이나 보건소 여직원이나, 여자가 오면 다 난리가 났어요.

액션+공감 : 맞아요, 외지에서 결혼 안 한 여자가 들어오면 그런 일이 알게 모르게 많이 있는 것 같아요.

김애순 씨 : 김제 군청에 있을 때는, 한 지방 기자가 뭐라고 하는지 알아요? '아…. 내가 가시 돋친 장미를 꺾어야 될 텐데….'

액션+공감 : 어우~ 가시 돋친 장미~!!! 어우~~~ (마구잡이로 야유를 보낸다)

김애순 씨 : 원체 내가 그런데 대해서는 딱딱 끊어버리니까, 접근을 못 하게 하니까. 가시 돋친 장미를 꺾어야 된다고 해서, 내가 그랬어요. '꺾어 보세요? 자신 있으면.'

액션+공감 : 자신 있으면 ㅋㅋㅋ 그렇죠, 웬만한 자신감이…. 그러면 공무원 생활 하실 때에는 하숙하시고, 그 이후에는 계속 혼자 사셨어요? 친구나 가족이랑 같이 사시거나….

김애순 씨 : 아니요, 거의 혼자 살았어요.

액션+공감 : 그때 독신인 친구분들이랑 같이 사시거나 이랄 생각은 안하셨어요? 요즘에 저희는 비혼인 친구들끼리 같이 사는 경우가 꽤 있거든요.

김애순 씨 : 그런 생각은 별로 안했어요. 아! 같이 하숙한 적은 있어요. 우체국 다니는 여직원하고 하숙을 했는데, 그 동생이 언니, 언니 하면서 어떻게 따라가지고… 그런 적은 있었죠. 옛날 말로 S동생.

액션+공감 : S동생이요?

김애순 씨 : 시스터(Sister). S동생. 우리는 S동생, S언니라고 많이 했어요.

액션+공감 : 아~ 그런 말이 유행이었구나. 정말 좋은 호칭이네요! (웃음) 그러면 지금 현재에도 혼자 지내세요?

김애순 씨 : 그럼요. 나 집에 가면 얼마나 행복한데? 간섭하는 사람이 없으니까? (아하하하~)

액션+공감 : 또, 사람들이 '왜 여태까지 결혼 안하고 사냐' 이런 질문하면 '적당한 사람이 없다'고 하셨다면서요? (ㅎㅎㅎ)

김애순 씨 : 적당한 사람이 없다기 보다도, '데려갈 사람이 없다'고 했지. 적당한 사람이 없다고 하면 사람들이 '지는 얼마나 잘났길래…' 그럴까 싶어서 '데려갈 사람이 없다'고 했어요.

액션+공감 : 그러면 사람들이 다시 안 물어보고요?

김애순 씨 : 그렇죠~! '데려갈 사람이 없다'고 하는데, 뭐라고 하겠어요? '적당한 사람이 없다'고 하면 '아니야~ 내가 소개시켜줄게' 뭐 이러니까. '데려갈 사람이 없다'고 하면 다 웃어버리니까. (이런 삶의 노하우!) '왜 없어? 찾을 수 있지!' 이러는 사람도 있고 어떤 사람은 '아, 눈이 높아서 그러지' 하기도 하고.

액션+공감 : 혹시 그럼 젊으실 때 선자리 막 들어오고 그러진 않으셨어요?

김애순 씨 : 들어오기도 했죠. 내가 원체 떼어내 버리기도 했고. 그리고 가족들도 내 대상을 찾지를 못해요. 벌써 결혼이라는 것이 내가 하고 싶은 일에 가장 큰 장애물이었으니까요. 결혼해서 애기 낳고 키우고… '그런 생활이 나한테 얼마나 가치가 있어?' 그렇게 생각했죠.


여자가 결혼하는 것이 (지금보다 더) 당연한 시대, 여성이 남성과의 결혼을 통해서만 사회적 자원을 갖거나 특정한 위치에 오를 수 있도록 허용되는 조건 위에서 '자신다운 삶', '자신에게 가치 있는 삶'을 계속 고민하고 지속시켜 나간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래서, "특히 결혼 적령기를 넘겨버린 여성의 경우 집에서 시집가라는 부모의 독촉에 시달리는 데다 한 해가 저물 때면 더욱 불안해지는 게 보통인데 다른 독신여성들을 보면 마음의 여유를 찾을 수도 있다"(<한마음회 창립 취지 중)고 생각했다.




<한마음회>, 그 많던 독신 여성들은 어떤 시간들을 공유했을까?

액션+공감 : <한마음회> 같은 경우에는 다른 여성단체들처럼 사무실도 있고 상근활동가도 있고 그랬나요?

김애순 씨 : <한마음회>는 내가 럭키항공여행사에서 상무이사로 있을 때 저지른 건데, 오전에는 회사 가서 일 보고, 오후에는 한마음회에 가고…. 사무실은 내가 개인적으로 아는 분이 있었는데, 그 분 사무실이 넉넉해서 그쪽에 방 한 칸을 빌렸죠. 그렇게 해서 간사 하나 두고 시작을 했어요. (※ 사진 : 1990년 <한마음회> 창립 당시의 김애순 씨. 매일경제, 1990년 12월 20일자)

액션+공감 : 기사를 보면 여기로 문의하라면서 사무실 전화번호가 있더라구요! 그래서 단순히 친목모임이나 동아리는 아니고, 단체외형은 갖추고 있었구나 생각했어요.

김애순 씨 : 그럼요. 그리고 나중에 여성신문 교육문화원이 없어지고 은평구에 여성인력센터가 있었는데. 나중에 그쪽에 가서 사무실을 같이 썼죠. 남의 집에 더부살이를 하던 꼽사리를 끼던 하여튼 사무실은 있었어요.

액션+공감 : 여기저기 여러 분야에서 활동하시면서 인맥이 굉장히 많으셨던 것 같아요.

김애순 씨 : 제가 인맥은 많이 있었죠. (웃음) 그래서 여기저기 연락해서 <한마음회> 창립 1주년 기념행사는 크게 했어요.

액션+공감 : 아, 한마음회 창립총회 하고 난 이후에 1주년 행사요?

김애순 씨 : 네. 1주년 행사를 하는데 기념품 같은 것도 인맥을 많이 활용했죠^^; '우리 기념품 좀 뭐 좀 주실 수 있어요?'이러면서 연락하고. 유한양행 같으면 '아유~ 휴지 이런 거 좀 주세요', 또 금성사 같으면 시계도 얻고 해서.

액션+공감 : 창립 1주년 행사에는 회원분들도 많이 오셨나요?

김애순 씨 : 1주년 행사에 한 150명 정도 왔었어요. 1주년 행사를 63빌딩 코스모스홀에서 했어요.

액션+공감 : 63빌딩! 너무 잘나갔다~ (웃음) 그럼 정기적인 모임으로는 얼마나 자주 만나셨어요?

김애순 씨 : 정기모임은 한 달에 한 번씩. 독신여성들을 위한 교양강좌를 했으니까. 비정규모임은 가까운 사람들끼리 셀 수 없이 있었죠. 거기서 또 끼리끼리 그룹들이 있었으니까요. 자기들 같이 만나서 밥도 먹고, 서로의 집에도 가고, 또 우리가 여행을 좋아해서 잘 다녔어요.

액션+공감 : 국내로요?

김애순 씨 : 그렇죠. 주로 국내로 여행을 갔죠, 명절 때 집에 못가니까.

액션+공감 : 아하하하하~ 집에 못가니까~ (눈물을 닦고) 저 같은 경우는 집이 지역인데 서울에 살고 있거든요. 명절 때 바빠서 집에 못갈 때도 있기는 했지만, 명절엔 왠만하면 꼭 갔거든요. 안가면 부모님이 너무 뭐라고 하셔서…. 그때는 명절에 집에 안가면 부모님의 닦달이 훨씬 더 심하지 않았나요? (웃음)

김애순 씨 : 아우~ 그렇죠. 그렇지. 그런데 사람들이 나이 먹고 그러니까 안 가려고 그러더라고. 집에 갔다하면 답답하니까. 자꾸 시집 안가냐고 하니까 그게 스트레스 받는 거예요. 그래서 명절 때엔 내가 ‘어디로 모여라!’ 해서 누군 집에 모이거나, '차 가진 사람은 차 가져와라' 그래서 같이 여행가고…. 아침엔 딱 밥상 챙겨놓고 자기 각자 부모님 향해서 ‘어머님 아버님 못가서 미안합니다, 죄송합니다’ 절했지.

액션+공감 : 푸하하하~ 명절 아침에 다 같이 그렇게 인사했다구요?

김애순 씨 : 인사하고 같이 밥 먹고. 아, 부모한테 미안한건 알아야지. (웃음)

액션+공감 : 언니네트워크 회원분들중에 비혼인 분들은 주로 20대에서 30대분들이 많은 편이거든요. 기사를 보니까 <한마음회>는 30대가 50%, 40대가 30%였더라구요. 회원분들이 대부분 3-40대였으면, 이미 결혼을 왜 안하냐는 압박을 집중적으로 받는 시기를 넘긴 분들이었겠어요. 그러면서도 계속 그런 이야기를 듣고…^^;

김애순 씨 : 그때 우리는 30대가 많았어요. 그 당시 나도 40대였으니까. 나보다 나이 많은 사람들은 그렇게 많지 않았어요. 몇 명 안됐어요. 더더구나 50대는…. (<한마음회>의 최고령자는 58세 였다고 한다!)

액션+공감 : 그렇게 명절에 모이시면 뭐 하셨어요? 예전에 언니네트워크에서도 회원분들끼리 명절에 모임 같은걸 한 적이 있었다고 들었거든요. 명절에 집에 안내려가는 비혼 언니들 다 같이 모여서 밥 먹고 즐겁게 노는 명절모임.

김애순 씨 : 명절이 그렇죠. 게임도 하고, 각자 자기 살아온 얘기도 하고, 유머도 하고. 산에도 가고, 뭐 구경도 하고… 명절이니까!

액션+공감 : 당시 <한마음회> 같이 하셨던 분들 중에서 지금까지 만난다거나 관계를 유지하고 계신 분은 있으세요?

김애순 씨 : 있어요. 한 세 명 정도.

액션+공감 : 그 분들은 혹시 지금 독신이세요? 아니면 결혼하셨어요? (눈 반짝반짝)

김애순 씨 : 한 명은 결혼 안하고. 두 명은 결혼했어요.

액션+공감 : 아… 두 분은 결혼 하셨구나. (무척 아쉽다는 듯) 그럼 그 분들은 그때에도 이미 늦은 나이에 결혼 하신 거였네요. 그런데 <한마음회> 회원분들 중에 나중에 결혼하신 분들이 많이 있었나요?

김애순 씨 : 많지는 않아요. 그런데 연락이 되어야 아니까…. 연락이 된 사람만 알지, 연락 안 되는 사람들은 잘 몰라요.

액션+공감 : 같이 <한마음회>에서 만나셨는데, 결혼한 친구 보시면 어떠세요? (ㅎㅎㅎ)

김애순 씨 : 그냥 뭐…. 그래요. 결혼하면 행복하게 살라고. 어떤 사람은 결혼해가지고 불행하면 '야! 그러니까 누가 결혼하래?!' '시집가지 말라니까 왜 갔니!' 그러기도 하는데, 난 그러지 않아요. 이왕에 자기가 선택한 운명이니까, 행복하게 살라고. 그렇잖아요, 이미 결혼한 사람한테 왜 결혼했냐고 이야기 하는 게 무슨 소용이예요.

액션+공감 : 그럼 1990년도에 <한마음회>가 만들어지시고, 한 몇 년 활동하신 거예요?

김애순 씨 : 아니… 그게…. 내가 이야기하다가 말았는데…. 창립 1주년 행사를 거창하게 했는데, 왜 사람이 그런 게 있었잖아요, 어떤 큰일을 하고 그 일이 끝나고 나면 허탈해지잖아요. 정신없이 뛰어다니다가 끝나면 모든 게 스탑 된 것 같으니까 힘들었어요. 몸이 아팠어요. 그래서 강원도에 원고 쓴다고 가 있었는데, 그때 안 좋은 일들이 있었죠.

단체를 할 때 그 전에 보면, 회장들이 보통 자기 주위의 사람들만 이사로 쓰더라고. 우리나라 조직이 다 그래요. 자기 친구, 동창, 지역 선후배…. 그래서 난 그게 아주 싫었거든요. 그래서 그냥 <한마음회> 와 있던 사람들 중에서 선정했죠. 그런데 한 사람이 회장 차지하기 위해서 이사들에게 이상한 소문을 내고…. 그 사람이 경상도 사람이었는데, <한마음회>가 91년에 창립 1주년 행사를 하고 그 해 12월에 대통령 선거가 있었으니까… 김영삼씨가 92년부터 대통령 했을 거예요. 심지어 김애순은 전라도 사람이니까 DJ다… 이런 이야기까지 했죠. 나는 거기에서 DJ, YS 절대 이야기한 적이 없어요. 사람이 속마음은 다르더라도 중립은 지켜야 하니까. 그래서 '나 이제 안 한다…' 그래서 그만두었죠.

액션+공감 : 아…. 너무 아쉬우셨겠어요. 창립멤버이신데….

김애순 씨 : 그래서 그 이후에 <한마음회>가 끝나버렸어요.

액션+공감 : 그만 두신 이후에요?

김애순 씨 : 네. 그 이후에 잘 되질 않았죠. 그러니까 <한마음회>가 활동한 게 한 2년…? 그래도 내가 1994년도에 <독신, 그 무한한 자유> 출판기념회 할 때에는 단체가 깨진 이후에도 <한마음회> 회원들이 35명 정도 왔어요.


당시 30~40대를 중심으로 한 독신여성들이 모여 있던 <한마음회>가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다면 어땠을까? 그 당시의 회원들은 지금쯤은 다들 50대~70대가 되었을 테고 그랬다면 지금은 어떤 활동을 만들어가고 있을지, 그 사이에 새로운 독신여성들이 계속 들어왔을지, 또 <한마음회>에서 내보였던 포부처럼 '독신타운'이 지금은 시범적으로라도 운영되고 있을지 상상해보기도 한다.

여러 가지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며, <한마음회>가 의미 있었던 이유는 서로가 서로에게 '혼자가 아니라는 점'을 확인할 수 있는 '네트워크'가 되어주었다는 점을 머릿속 한 켠에 기록한다.




마지막으로! 독신에게, 비혼에게 필요한 것

액션+공감 : 독신에게 필요한 게 경제력, 건강, 많은 친구, 그리고 취미생활이라고 하셨던데요.

김애순 씨 : 그렇죠. 자기 특기나 취미생활이 있어야죠.

액션+공감 : 취미는 뭐가 있으세요?

김애순 씨 : 저는 등산. 지금도 등산 일주에 한 번씩은 가요. (헉!) 나이가 70 됐어도. 예전에는 북한산까지 가고 그랬는데, 요즘에 그렇게 무리는 안 해요. 쉬엄쉬엄.

액션+공감 : 저는 일 년에 한 번도 못 가는데… (ㅎㅎㅎ) 그동안 건강이 안 좋으시거나 그런 적은 없으세요?

김애순 씨 : 크게 없었어요. 하루에 아침에 한 시간씩 꼭 운동해요. (하아~) 그리고 또 걷는 것도 해요. 차 안가지고 가면 원당역에서 집까지 2~3킬로는 꼭 걸어요. 왕복 한 시간 정도. 회사 갈 때는 주차장이 있으니까 차를 가져가지만, 다른데서는 주차도 힘들고.

액션+공감 : 저희도 사무실이 주택가여서, 걸어오시는데 고생스럽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김애순 씨 : 아니예요~ (편하신 곳으로 찾아가겠다고 했을 때에도, 흔쾌히 언니네트워크 사무실까지 올 수 있다고 하셨던…)

액션+공감 : 집에 혼자 계실 때 너무 편하고 좋다고 하셨잖아요. 혼자 사신지 오래되었으면, 심심하거나 할 때는 없으세요?

김애순 씨 : 그런 건 없어요. 책 읽고, 신문보고, 인터넷 들어가서 보고, 또 잠자고, 운동하고… 심심한 건 없어요.












액션+공감 : 책 소제목에 '영원한 더블은 없지만 영원한 싱글은 있다'고 말씀하시기도 하고, 결혼을 '지긋지긋한 천국'이라고 하면 독신을 '심심한 천국'이라고 묘사해서, 지긋지긋한 천국보다 심심한 천국이 낫다고 하셨더라구요. 비유가 재미있었어요. (<독신의 수난사>에 보면 '그랑 카르트레'라는 사람이 했던 말이 나온다. '독신과 결혼의 차이는 단 한글자이다, 지루함과 지루함들.')

김애순 씨 : 이 책 쓸 때 그런 말이 많이 돌았어요. 기혼자들이 '아이구~ 지긋지긋하다!'. 결혼안하는 사람들이 혼자 살면 심심할 수는 있겠죠. 하지만 마음이 편하니까. 결혼한 사람들은 얼마나 마음이 복잡해요? 남편, 자식, 시집식구…. 지금도 저는 그렇게 이야기해요. 집이 천국이라고. 누가 간섭하는 사람이 없잖아요. 얼마나 좋아요. 그래서 주위 사람들이나 결혼해서 사는 친구들이, 참 행복하겠다고 해요. 요즘에 그런 말이 있잖아요. 남편이 있다고 할 때, 집에서 하루 세 끼 다 먹는 남편들을 0식'님', 1식 먹는 남편들을 1식'씨', 2식 먹는 남편은 2식'넘'(놈), 3식 다 먹는 남편은 3식'새끼'.

액션+공감 : 아하하하~ 정말! 그런데 저희가 보기에도 정말 건강해 보이세요.

김애순 씨 : 건강하죠. 그러니까 혼자 살면 건강관리를 잘 할 수 있는 기회가 많죠. 그런데 혼자 살면 더 건강이 안 좋아지는 사람들이 있어요. 비실비실. 그건 큰 잘못이에요. 밥도 그렇죠. 저는 지금도 잡곡이랑 섞어서 혼식으로 먹거든요. 그런데 가족이 있는 사람들은 가족이 싫어하면 먹고 싶은 대로 못 먹잖아요. 자기만 따로 어떻게 해 먹어요. 반찬도 그렇고 내 위주로, 늙은이 영양 위주로, 내가 아프면 그 위주로. 혼자 사는 사람들이 건강관리를 제일 잘 할 수 있어요, 그런데 이상하게 안 해. '에이~ 뭘 혼자 사는데 반찬을 여러 가지를…' 그런데 우리 같은 사람들은 밥해 먹는 게 귀찮다고 생각하면 안 돼요.

액션+공감 : 건강한 몸만이 나의 재산이다? ㅎㅎㅎ

김애순 씨 : 그럼요. 돈이 많이 있으면 무슨 소용이여? (어느 순간 인터뷰이와 인터뷰어가 바뀌고…) 그런데, 비혼들인데, 비혼인 회원들은 나이대가 어떻게 돼요?

액션+공감 : 회원 중에서 나이가 있으신 분들의 경우 40대인 것 같아요.

김애순 씨 : 다들 전문직이에요? 결혼안하고 살려면 직장은 있어야 할텐데…. (근심스러운 듯)

액션+공감 : 거의 다 직장은 있으세요. 2,30대가 대부분인데, 요즘 같은 시대에 비정규직이 아무래도 많죠. 서울에서 사시는 분들이 대부분인데 경제적으로 넉넉하지는 않고, 전세나 집 이런 것 때문에 오히려 더 어려운 분들이 많아요.

김애순 씨 : 경제적으로 독립한 사람이 많이 없겠네요. (안타까운 듯)

액션+공감 : <한마음회>가 지금까지 있었으면 저희가 비빌 언덕이 있었을 텐데! (ㅠㅠ) 언니네트워크에도 결혼 하지 않고 비혼으로 살고 싶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이 계시거든요. 그런데 어느 순간에는 이런 생각들이 너무 자기 혼자만의 고민처럼 느껴질 때가 있잖아요. 그래서 전에 나 같은 사람이 있었다면 지금은 어떻게 살고 있을까, 궁금하신 분들이 많은 것 같아요. '참조' 할 수가 있잖아요.

김애순 씨 : 그렇죠.

액션+공감 : 그래서 저희가 인터뷰 하고 싶었던 이유가, 다른 분들도 <한마음회>의 존재를 알았으면 해서이기도 해요. '이전에도 있.었.다'는 걸 알리기 위해서요^^

김애순 씨 : 어디에다?

액션+공감 : 언니네트워크에서 운영하는 '언니네' 사이트에, 한 번쯤 만나고 싶었던 여성들의 인터뷰를 연재하는 '이 언니를 만나다'라는 코너가 있거든요.

김애순 씨 : '이 언니'가 아니라 '이 할머니'네~!

액션+공감 : 아니에요! ㅎㅎㅎ S언니시죠~!



"남성의 이야기는 '역사'가 되지만 여성의 이야기는 '에피소드'가 된다"


여성주의를 처음 접하기 시작했던 20대 초반 무렵, 어떤 여성학 강좌에서 들었던 한 마디가 아직도 기억에 남아 있다. 기억되지 않고 사라지는 발자취, 역사를 구성하는 요소가 아니라 역사의 대상으로서 설명되는 몇몇 여성들의 희미한 흔적. 여성주의자로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나 이전의 여성들'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 여기저기 헤매던 기억이 하나쯤은 있으리라.

그래서, 나는 나와 비슷한 열망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먼저 발걸음을 내 딛은 언니들이, '발자국의 윤곽'을 남겨준 것에 감사한다. 물론 각각의 여성들의 삶은 조건도 맥락도 너무나 다르다. 하지만 그 발자국의 윤곽을 찾는 과정은 나에게 과거와는 다른 질문을 던지게 하고, 다른 답을 찾도록 하기 때문에 '이미 지나가 버린 것' 이상의 의미가 있다. 그리고 운이 좋다면, 그 과정에서 길을 잃고 헤맬 때마다 꿋꿋하게 자신의 삶을 꾸려온 내 주위의 여성들을 만날 수도, 참조할 수 있는 표지판을 만날 수도 있겠지!

그 누구라도 흔들리지 않으면서, 회의하지 않으면서 살아갈 수는 없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여전히 결혼이라는 주어진 길을 벗어나 ‘불완전’하지만 새로운 길을 찾아가는 여성들에게, 같은 길을 걸어갔던 또 다른 여성들의 존재는 큰 힘이 된다는 사실은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진리!


더 많은 S언니들의 발자국의 윤곽을 찾을 수 있기를,
그래서 우리의 길을 걸어가는데 제법 단단한 디딤돌을 만들어 갈 수 있기를,
내가 더욱 선명한 발자국을 남기며 계속 걸어나아갈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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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김윤희 2012.03.02 18:1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꼭 만나보고싶네요..어쩌면 이다지도 감동적인지.콧날이 시큰해집니다.
    이런 룰모델이 있구나.내 언니 할머니들이 이런 맹렬여성이 있구나.40대인데 사무실차리고 밤낮으로 저렇게 활동하기가 쉽지않은데.더구나 우리할머니는 나이도 비슷한데..정말 너무나 다른세상사람같습니다..

  2. 김윤희 2012.03.02 18:2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왜냐면 지금도 비혼여성보기를 남자에게 선택당하지못한 어디 좀 드세거나 모자란 여성이라고 생각하는데.386세대인 저시대에도 여성운동이니 하물며 독신여성모임은 정말 한가한 소리라고 햇거든요..그런데..전쟁나고 얼마안된 나라에서.그 많은 눈초리를 견뎌내고..집에서 내놓은 자식소리듣는게 미국과 달리 한국은 너무나 힘든 말이잖아요.존경스럽네요.꼭 한번 강의를 해주심 좋겠네요

  3. 김영자 2017.02.25 17:0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는 64살입니다 꼭 같이하고픈 맘 입니다
    그런데 돌싱도 가는한가요


 페미백미
그래, 비혼은 라이프스타일 '정치'다!


몽MONG (언니네트워크 액션+공감팀, canicular67@gmail.com)


비혼운동을 하면서 인터뷰를 하다보면 종종 나에게 던져진 질문들에서 인터뷰어 혹은 이 사회가 비혼에 대해 가지고 있는 어떤 '혐의'들을 느낄 때가 있다. '세상은 자기가 좋은 대로만, 하고 싶은 것만 하면서 살 수는 없지 않나요?' 그럴 때마다 나는 비혼 여성들의 다른 삶을 살고 싶다는 목소리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충분히 이야기되기도 전에, 결국 자신이 살고 싶은 대로 살겠다는 개별적인 여성들의 자기주장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 것이 현실인가 싶어 못내 씁쓸하다. 그러다 쓰여진 지 꽤 시간이 흘렀지만 최근에서야 '이' 문제적인 글을 읽게 되었다.


… 나는 생경한 단어를 만들어내는 것 자체를 비판하지 않았다. 나는 생경한 단어를 만들어내고 그것을 쓰지 않는 사람들을 ‘성 차별’로 비판하는 것이 과도함을 지적했다. 결혼제도에 비판적인 사람들이 ‘비혼’이라는 말을 사용하는 것 자체가 문제는 아니지만, ‘미혼’이라는 말을 쓰면 안 된다는 주장은 지나친 얘기다(그러나 ‘미혼모’라는 표현은 결혼하지 않고 아이를 낳은 여성에 대한 편견을 담고 있고, ‘한부모’라는 더 나은 표현이 있으므로 사용하지 않는 게 좋다). … 게다가 ‘비혼’은 일부 페미니스트들이 자신들의 정치(라이프스타일 정치)를 드러내기 위해 선호하는 표현이다(결혼을 ‘못’한 게 아니라 ‘안’했다는 것을 강조하는 표현이다). 따라서 개인의 삶 방식 변화를 통해서 여성 해방을 이룬다고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은 ‘비혼’이라는 용어 사용을 충분히 꺼릴 수 있다.

- 정진희, 레프트21, '페미니즘 언어와 정치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필요하다', 2010년 07월 17일


한동안 '분노'를 참기 어려워 방방 뛰었다. 이 기사의 필자가 보여주는 '순진함'만큼 비혼으로서 내가 어떤 존재인지 스스로에게 던지는 끊임없는 의문과 질문, 늘 따라오는 '정상적'인 삶에 대한 열망이 아무런 갈등 없이 설명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당신의 세상은 참 단순해서 좋겠다고 웃어넘기려고도 해 봤지만, 나는 '비혼은 라이프스타일 정치'라는 정의의 '말씀' 안에서, 그리고 그 밖에서도 소리 없이 사라지고 싶지 않다.


'라이프스타일 정치'라는 말,

이 글에서처럼 비혼이라는 말이 라이프스타일 정치, 즉 결혼하지 않은 상태로서의 삶의 양식를 드러내고 추구하기 위해 '선호'되는 것라면, 한국 사회를 향한 비혼 여성들의 목소리는 어떻게 이해될 수 있을까? 나는 비혼을 라이프스타일 정치로 규정하고 해석하려는 '시도'는 그것이 의도적이든 무의식적이든 비혼 여성들을 '할당'으로서 위치시키는 효과를 낳는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자신을 미혼(언젠가 결혼을 할 수도 있지만, 현재 결혼을 안 한 상태인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잖아."

자신을 비혼으로 '증명'해내야 하는 여성들이라면 너무나 익숙한 말일 것이다. 내가 왜 미혼이 아닌 비혼인지를 이야기할 때 한결같이 상대에게서 나오는 반응이다. '실제로 결혼을 "안"하는 여성도 있고 결혼을 "못"한 여성도 있다, 비혼이라고 하지 않는다고 해서 꼭 틀린 것은 아니다'라는 의미다. 이러한 말들은 너무나 쉽게 비혼을 그저 '서로 다른 삶의 형태' 중 하나인 것으로 간주한다. 결혼이 정상이기는 하지만 결혼하지 않는 여성들'도'있다는 여백에 대한 주장? 비혼 여성들의 목소리는 그러한 여백의 공간을 요구하는 할당제를 위한 요청인가? (그렇다고 하더라도 이 목소리는 대체로 기혼이거나 미혼인 '여성'들에게 요구하는 목소리로 여겨진다.)

미혼이라는 말을 쓰면 안된다 써도 된다, 맞다 틀리다 차원의 이야기가 아니다. '할당'된 존재, 라이프스타일로서 규정된 순간 비혼 여성들은 여성주의적 관점에서 문제제기하고자 하는 구체적인 인식체계를 주장하기보다, 기존의 체계와 존재들을 '위협'하지 않는다는 점을 '자진해서' 설명하고 이해시켜야 하는 상황에 놓인다(그래야 안전하게 가족제도 안에서 '라이프스타일'로라도 존재할 수 있으니까). 나는 이처럼 비혼과 같은 젠더 문제가 논의되는 방식 자체가 이미 결혼제도를 공고히 하는, 그것으로 이익을 얻는 남성중심적 사유에 기여하는 방식으로 짜이기 쉽다는 증거로 읽힌다. 그 인식틀에 대한 문제제기에 귀 기울이지 않은 채 용어가 사용되는 정도의 O, X를 매기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나.


진짜 문제?

비혼이 '스타일'로 해석될 때 내가 분노하고 절망하는 이유는 이렇게도 살 수 있다고 '할당된' 비혼 여성들의 위치와 행위성이 제기하는 첨예한 정치적 문제를 희석시키고 희화화 때문이다. 비혼을 비롯해서 사회적 소수자들이 그렇게 외치는 '다르게 살고 싶다'의 '다르게'는 그저 지루한 남들의 인생과는 달리 특별하게, 독특하게 살고 싶다는 욕망인가? "진짜 문제"는 비혼이 라이프스타일 정치인 것이 아니라, 어떤 라이프스타일들이 특권적인 라이프스타일과 '어떻게' 다른지를 논의할 수조차 없는 우리사회의 가부장적 전체주의다.

'모든 사람이 군대에 가야한다', '모든 사람은 이성과 사랑해야 한다', '모든 사람은 정상적인 몸을 가져야 한다' … 이런 요구들을 우리는 파시즘의 폭력이라고 부른다. 미혼(未婚), '아직' 결혼하지 않았다는 말에는 이미 모든 사람은 결혼을 해야 하고 또 하고 싶어해야한다는 전제가 깔려있다. 그건 누구의 전제인가? 모두가 결혼해야 한다니, 이처럼 비가시적이면서도 강력한 폭력이 어디있나.

비혼(非婚)은 단순히 미혼에 대한 대응항으로 구성되는 것이 아니다. '모두가 결혼해야 한다'는 전제(이 말은 사실 '모든 여성은 반드시 결혼을 해야 한다'는 전제다)를 깨뜨리는 비혼은 한국 사회에서 가부장제와 정상가족중심주의의 유지가 여성의 존재를 어떤 방식으로 통제하고 규정함으로써 가능했는지 질문을 던지는 존재다. 우리 사회가 남성과 달리 여성에게 '어머니', '아내', '딸' 이외의 정체성을 허용하지 않음으로써 어떻게 '시민'의 권리에서 여성을 제외시켰는지, 가사/출산/양육 등 가족유지의 책임을 전담시키면서 동시에 노동권을 어떻게 박탈시키는지, 그래서 누가 이익을 얻고 있고 무엇이 유지되고 있는지를 문제 삼는다.

사회가 비혼을 '불안한 삶'이라 낙인찍고 비혼 여성들 스스로도 비혼으로서 자신의 삶을 구체적으로 상상하기 어렵다 토로하는 것은 그만큼 여성에게 혼(婚)의 여부가 정체성과 삶을 구성하는 너무나 강력한 중심축이자 기준이라는 사실, 기존의 결혼/가족을 중심으로 한 여성의 생애주기에서 벗어난 삶의 모델을 기획하기가 어렵다는 증거다.

나는 위 기사의 필자가 이미 스스로 비혼의 정치학에 대한 모순된 태도를 드러내고 있다고 생각한다. '미혼모'라는 단어가 우리 사회에서 특정한 여성에 대한 편견을 전제한 말로 통용되는 이유는 단순히 '모(母)'라는 단어가 붙었기 때문이 아니다. -저출산 위기를 들먹이는 요즘 같은 시대에 '엄마'는 오히려 칭찬받고 환영받는 존재가 되어야 하는 것 아닌가?- 이성애 결혼제도와 정상가족 내에서 이루어지지 않은 여성의 재생산권 실천, 남성 가부장의 승인 없는 아이를 낳음으로서 '모'가 되고자 하는 여성이기 때문이다. 그 비난이 가능한 이유는 너무나 명백하지 않나? 여성이 결혼/가족제도를 경유하지 않고 자기 존재를 드러내는 것을 견딜 수 없기 때문에.

여성의 삶이 결혼제도, 가족중심주의를 지탱하고 실천하는 공간 그 자체일 때, 여성이 자신은 다른 존재일 수 있다고 외치는 목소리, 다른 삶을 기획하고 싶다는 목소리를 내는 행위는 그 자체로 얼마나 위협적인가. 지긋지긋한 남성 사유의 역사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벗어나겠다는 절박한 목소리. 그런데 우리 사회는 이런 목소리들에 어떤 시선을 보내고 있는 걸까. 위의 기사를 읽는 순간, '비혼 여성들의 존재 자체를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이 아직 우리 사회에는 없다'는 여성학자 전희경의 말을 다시금 떠올릴 수 밖에 없었다.

비혼의 정치학은 차별적인 성별/가족/결혼제도에 반대하는 '정치적 올바름' 때문에 중요한 것이 아니다. 사실 비혼이 자신의 삶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를 고민하는 '결혼 적령기'의 여성들에게 '대안'으로서 기대를 받는 것은, 그것이 불안하지 않고 안정된 삶, 더 가치 있는 삶을 가져다 줄 것이라는 장밋빛 희망을 제시하고 있기 때문이 아니다. 기존에 사회적으로 승인되는 관계맺기의 방식과 자신에게 요구되는 '여성됨'을 통해서는 자신의 앞에 펼쳐진, 살아내야 하는 갈등과 딜레마를 설명하고 해석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비혼을 '라이프스타일 정치'라고 설명해낼 수 있는 갈등 없는 삶보다, 자신의 존재에 의문을 품고 사회에서 경계짓는 정의와 역할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고 정상적인 삶에 대한 욕망과 '나 답게' 살고 싶다는 열망 사이에서 기대와 협상과 좌절을 거듭하는, 그래서 한국 사회가 가진 '관계의 위기'를 자신의 존재를 통해 극명하게 드러내며 '다르게' 살아고자 고군분투하는 여성들의 삶이야말로, 무엇이 '정치적'인지를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 이 글은 언니네트워크에서 진행한 열린강좌 <비혼 제너레이션을 말하다>의 
   전희경, 전은정, 박선영님의 강좌에서 많은 도움을 받았습니다. 

* 이 글은 주간인권신문 인권오름(http://www.hr-oreum.net/)의 [인권이야기] 코너에 동시 연재됩니다.


* 이미지출처
   - 1, 2, 3, 5번째 사진 : www.gettyimageskorea.com
   - 4번째 사진 : 언니네트워크
   - 6번째 사진 : www.sxc.h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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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네트워크 열린강좌 [비혼 제너레이션을 말하다]의 첫 강의,
1강 <비혼 제너레이션의 등장과 여성 세대 경험의 차이>에서 논의된 내용과 관련해서
도움이 될 수 있는 언니네 채널[넷] 2010년 11월 특집글입니다^^

비혼으로 살아가는 여성으로서 '나'와 비혼 세대를 키워낸 여성으로서의 '엄마'와의 관계에서 드는 고민,
그럼에도 왜 현재 여성들에게 다른 모델을 기획하고 상상하는 것이 중요한지를 살펴볼 수 있는 글이예요~






 
[116호] 비-혼란
1. 여는 글 [보러가기]
2. 골드하지 못해 미안해
3. 묻지마 서른, 비혼을 말하다 [보러가기]
4. 따로 사는 동거녀들 [보러가기]
5. 걱정마, 우린 사라지지 않아 [보러가기]
6. 비혼녀 노미의 아찔한 취미 [보러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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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네트워크 열린강좌 [비혼 제너레이션을 말하다]의 첫 강의,
1강 <비혼 제너레이션의 등장과 여성 세대 경험의 차이>에서 논의된 내용과 관련해서
도움이 될 수 있는 언니네 채널[넷] 2010년 11월 특집글입니다^^

2010년에 만났던 전주 비혼공동체 <비비>제주 비혼공동체 <비혼각몽>에 관한 글이예요~
강좌 이후에 비혼들이 어떻게 함께 모일 수 있을지, 다른 공동체 사례가 있는지 궁금해하는 분들이 많았는데

'공동체'가 이미 만들어져 있는, 혹은 '나중'의 먼 기획이 아니라 
내가 함께 하고 싶은 주변의 구체적인 사람, 내가 하고 싶은 구체적인 고민과 실천 속에서 가능한 것이라는
이야기를 실제 지역 여성 공동체 사례를 통해서 살펴보실 수 있습니다! 








 
[116호] 비-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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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묻지마 서른, 비혼을 말하다 [보러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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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강 <비혼 제너레이션의 등장과 여성 세대 경험의 차이>에서 논의된 내용과 관련해서
도움이 될 수 있는 언니네 채널[넷] 2010년 11월 특집글입니다^^

비혼에게 늘 따라붙는 '불안'을 '밈'이라는 개념을 통해 다르게 해석하고 있는 글입니다~
'비혼으로 살아온 시간에는 어떤 물질성이 있다'는 말, 기억하시죠? ^^ 





 
[116호] 비-혼란
1. 여는 글 [보러가기]
2. 골드하지 못해 미안해 [보러가기]
3. 묻지마 서른, 비혼을 말하다 [보러가기]
4. 따로 사는 동거녀들 [보러가기]
5. 걱정마, 우린 사라지지 않아
6. 비혼녀 노미의 아찔한 취미 [보러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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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비혼 제너레이션을 말하다] 1강 <비혼 제너레이션의 등장고 여성 세대 경험 차이> 강의 중,
많은 분들이 비혼이나 가족과 관련한 읽을만한 책은 무엇이 있을지 궁금해하시는 것 같아서
말씀드린 대로 <비혼 자료집>에 부록으로 나와 있는 추천도서 목록을 올립니다~!

(※ 참고로 책 소개 내용은 온라인 서점의 출판사 설명 문안을 그대로 옮겨놓은 것입니다^^)

 












○ 가족이야기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권명아 | 2000 | 책세상

우리는 가족적이라는 것 속에 투영된 따뜻함, 화목함, 우애, 포근함, 위안 등의 감정을 어디서 회복해야 하는가? 이 책은 이러한 물음에 답하기 위해 박완서, 방현석, 신경숙, 배수아, 은희경 등의 작품을 중심으로 <가족이야기>가 어떻게 만들어지고 있는지를 살폈다.


○ 가족의 이름으로 : 한국근대가족과 페미니즘

이재경 | 2003 | 또하나의문화

한국 가족, 그리고 한국 가족의 변화를 여성의 경험을 통해 읽어내고 있는 책. 이 책은 개별적이지만 결국 사회적일 수 밖에 없는 여성문제를 고민하며, 현 시점에서의 가족의 현실을 보여주고 미래를 위한 대안들을 모색하고 있다.


○ 누구와 함께 살 것인가 : 새로 쓰는 가족 이야기

또하나의문화 동인들 | 2003년 | 또하나의문화

'가족'이라는 주제를 중심으로 오십대 동인들과 이십대 동인들의 생각을 엮었다. 오십대 페미니스트와 이십대 페미니스트가 가족에 대해 정리한 글을 수록하고, 이십대를 회고하며 쓴 삼십대 여자의 글, 그리고 삽십대 남자의 이혼을 다룬 글 등 자전적인 글도 함께 실었다. 또한 영화평과 서평, 현장 연구를 통해서 다른 세대의 삶을 엿볼 수 있다.


○ 언니네 방 1 (내가 혼자가 아닌 그 곳)

언니네 사람들 | 2006 | 갤리온

가장 깊숙이 숨겨놓은 비밀을 마음껏 풀어내고, 당차게 세상을 살아가는 여자들이 삶의 지혜를 나누는 사이버 커뮤니티 '언니네'. 이 책은 '자기만의 방'의 글들 중, 지난 5년간 가장 많은 추천을 받은 글을 모아 엮었다. 여자들이 말하는 성, 사랑, 삶에 관한 가장 깊은 진실과 용감하게 얻어낸 지혜를 통해 삶에 대한 강한 애정과 성찰을 보여주며, 용감하고 지혜로운 4만여 명의 언니들이 언니네의 '자기만의 방' 코너를 통해 서로를 지지하고 위안과 힘을 주고받으며 사는 모습을 솔직담백하게 담아내고 있다.


○ 언니네 방 2 (사람과의 관계가 어려울 때 내게 힘이 되어줄 그곳)

언니네 사람들 | 2007 | 갤리온

관계를 풀어나가는 열쇠!

혼자라도 즐겁고, 타인과 함께라도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해 '언니네 사람들'이 선택한 '새로운 관계 맺기'에 대해 보여준다. '언니네 사람들'은 가깝기 때문에 가장 괴로울 수 있는 '일상의 관계'에 대한 솔직한 고백을 풀어놓고 있다. 가족, 친구, 애인, 그리고 직장 동료 등 자신을 둘러싼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얻은 상처를 보여주고, 그것을 치유하며 얻어낸 지혜를 가르쳐준다. 또한 '네 잘못이 아니야'라는 단순한 말이 복잡한 관계를 풀고 새로운 관계로 거듭날 힘을 준다는 것도 알려주는 등 모든 어려운 관계를 풀어나갈 열쇠를 건네고 있다.


○ 언니들 집을 나가다 (가족 밖에서 꿈꾸는 새로운 삶 스물여덟 가지)

언니네트워크 | 2009 | 에쎄

세상 살 만큼 살아본 언니들의 수다!

결혼하지 않는 독신들의 다양한 삶의 방식을 담아 낸 『언니들 집을 나가다』. 세상에 자신을 맞추기보다는 가장 자신다운 모습으로 살기 위해 모험을 거쳐 새로운 삶을 선택하는 용감하고 지혜로운 여자들이 있다. 그들은 인터넷 커뮤니티 사이트 '언니네'에 모여 공감을 나누며 살아간다. 그녀들의 3번째 이야기에는 결혼을 피해 홀로 살아가는 여성들의 삶과 진지한 고민이 담겨있다.


○ 친밀성의 거래

비비아나 A 젤라이저 | 2009 | 에코리브르

이 책은 친밀함과 경제 활동에 관한 일반적인 질문으로 시작해, 친밀함의 법적 처우에 대해 살펴보고, 친밀한 커플에 대해 면밀하게 검토하고, 돌봄 관계 그리고 가족의 생활을 살펴봄으로서 정책적 함의를 포함한 일반적인 결론에 이르고 있다. 또한 사람들이 실제로 실행 가능한 대인관계와 삶의 방식을 어떻게 구축하는지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이끌어내고 있다.


○ 결혼제국 (결혼이 지배하는 사회 여자들의 성과 사랑)

우에노 치즈코 | 2008 | 이매진

이 책은 ‘왜 결혼을 하는가’에 대한 특별한 의식이 없는 상태에서 시작된 결혼 생활은 그 안에 얽힌 근본적인 문제들은 제쳐두고 다만 ‘결혼 유지’를 위한 애정, 인내, 배려라는 올가미로 여자들을 희생시키며 억압자와 피억압자를 양산하고 있음을 얘기한다. 저자들은 이 같은 상황에서 결혼제국 속에서 갈림길에 서 있는 우리 시대의 여자들에게 결혼에 갇히지 않는 능동적인 선택을 하라고 제안한다.


○ 새로 쓰는 결혼 이야기 1,2

또하나의문화 편집부 | 1996 | 또하나의문화

10년 전 오늘, 결혼을 안했다는 이유만으로 '비정상인'으로 억압당해 온 비혼자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책. ‘문화다양성’이 한국의 화두가 되었던 시절, 기존의 결혼 제도를 넘어서고자 했던 젊은 세대(?)들의 급진성을 읽어 낼 수 있다.


○ 혼자사는 여자 백마 탄 왕자

쟝 클로드 카우프만 | 2001 | 문학세계사

마리 끌레르 Marie Claire」誌를 구독하는 독신 여성을 대상으로 한 앙케트 조사자료와 상담편지를 토대로 프랑스 사회학자가 그려낸 독신(비혼)여성에 대한 보고서. ‘자립의 삶’과 ‘결혼생활의 규범을 향한 미련’ 사이에서 선택과 불안이 공존하는 현실을 보여준다. 새로운 사생활의 모델, 자립의 궤도는 과연 성립될 수 있을 것인가?


○ 화려한 싱글 돌아온 싱글 언젠간 싱글

우에노 치즈코 | 2008 | 이덴슬리벨

비혼, 이혼, 노령화 등 시대의 변화에 따라 원하든, 원하지 않든 싱글로 살아갈 운명에 놓인 많은 여성들에게, 이것이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이라는 것을 설명한다. 그리고 어떻게 하면 좀 더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 같이 고민하고 해법을 찾아간다.


○ 뼛속까지 자유롭고 치맛속까지 정치적인 (프랑스 남자와 결혼하지 않고 살아가기)

목수정 | 2008 | 레디앙

2007년, <레디앙>(www.redian.org)에 연재했던 '프랑스남자와 결혼하지 않고 살아가기'를 모태로 출간된 책. 저자는 프랑스에 유학을 갔다가 만난 프랑스 예술가와 사랑을 나누고, 결혼 없이 아이를 낳았다. 한국에서는 법적으로 비혼으로, 프랑스에서는 시민연대계약(PACS)을 한 동거인으로 살아온 이야기를 담았다.


○ 대안적 가족제도 마련을 위한 기초자료집 :담론·제도·사례연구

다양한 가족형태에 따른 차별 해소와 가족구성권 보장을 위한 연구모임 | 2008 | 민주노동당

한국사회 새로운 가족담론 확산과 생활동반자관계 가족의 법적 지위 보장을 위한 ‘가족구성원 연구모임’이 논의 결과를 정리하여 발간한 보고서. 가족에 대한 기존 논의와 제도 밖의 가족 사례를 검토하고, 고용관련법 등 제도가 보호하는 가족의 구성요건은 무엇인지 살펴본다. 기존의 가족 형태가 아닌, 생활동반자관계에 대한 제도적 보호를 위해 필요한 사회, 정치, 문화적 토대들을 점검해본다.



진한 제목의 책이 1강에서 전희경님이 강좌 내용과 관련해서 추천해주신 책입니다. 
즐겁게 선택해서 읽으시길 바랄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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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언니네트워크 열린강좌 <비혼 제너레이션을 말하다>를 진행할 때마다 판매를 하고 있기도 한데요, 2010년 5월 언니네트워크에서 발행한 <비혼 자료집>이 도움이 될까해서 PDF로 올려놓습니다~ 
 
2000년도부터 그동안 언니네트워크가 생산한 비혼 관련 자료들을 모아 자료집을 편 낸 것인데요, 언니네트워크에서 운영하고 있는 여성주의 사이트 '언니네' 채널[넷]에서 연재되었던 특집글, 언니네트워크 토론 프로그램인 감자모임에서 논의되었던 발제문, 성명서나 질의서, 외부 토론문 등이 실려 있습니다.

온라인으로 출판되거나 공유되었던 글들을 묶은 만큼, PDF로 확인하실 수 있도록 파일을 첨부했으니 다운로드 하시면 됩니다~ 그리고 도톰한 두께의 자료집을 내 손으로 받아보고 싶으시다면! 언니네트워크 사무실로 연락주세요~ 인쇄비 5,000원과 우편료를 받고 배송해드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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