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체_ 유토피아이거나 잃어버린 낙원
집을 뛰쳐나오고 싶은 심정. 마음 통하는 동반자를 만난 것만 같은 기분. 왁자지껄 어울리던 친구들과 함께 있을 때면 내뱉고 싶어지는 말. 행복한 미래를 예약해 놓은 것처럼 마음 들뜨게 만드는 그 약조. “우리 나중에 같이 살자! 매일 밤 술 먹고~”
하지만 그 날은 쉬이 오지 않았다. 각자의 운동과 생계를 찾아 흩어지고 거처를 옮기며 일 년에 한두 번 만나기도 어려워지는 세상사. 혈기왕성하고 가난한 젊은 여자들에게 같이 모여 살자던 ‘나중’이란 ‘나중에 한 번 만나자’만큼의 가벼운 시간이 되고 말았던 것이다.
나에게 공동체는 비혼으로 - 페미니스트로서 행복하게 나이 들어 갈 수 있는 미래를 약속해주는 유토피아(가상의 이상세계)이기도 했다. 끊임없는 자기성장, 돌봄과 나눔, 곱게 늙었다는 징표로서의 주름, 흰 머리칼로 봄날의 외출을 꿈꾸게 하는 친구들과의 삶.
한 편으로는 질척함, 섭섭함, 배신과 자존심싸움으로 얼룩진 유혈극 속에서 ‘아름다운 관계’를 만들기란 엄격한 자기 수행이 필요한 일처럼 요원해보였고, 40살이 되기 전에도 제 한 몸 건사치 못할 것 같은 불안감이 밀려오면서 공동체란 ‘끝없는 도전’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결국, ‘공동체는 뭐..그냥 토끼같은 애인이랑 살고 말지-’ 라는 체념 속으로 들어가기도 한다.
언니들을 좀 만나야겠어.
2010년 8월 말경, 언니네트워크의 활동가들은 5박6일짜리 배낭을 싸매고 유랑을 떠났다. 이른바 <비혼유랑단-비혼발자국으로 그리는 지도> 언니네트워크는 여성단체 활동가들의 ‘쉼’을 지원하는 한국여성재단의 공모사업에 선정되었고 ‘마냥 쉬러가도 괜찮다!’는 프로젝트의 취지에도 불구하고 우리들은 ‘누굴 좀 만나야겠다’며 ‘전주’와 ‘제주’에 이정표를 세웠다.
전주와 제주에는 비혼공동체를 꾸리고 있는 언니들이 있다. 전주의 <비혼들의 비행 - 비비>, 제주의 <비혼, 각자의 꿈 - 비혼각몽>이 바로 그녀들이다.
내 두 눈으로 보고 싶었다. 다큐멘터리 <오이오감>에서, 하나 둘 같은 아파트 같은 동으로 이사해왔던 언니들, 김 세트가 생겼다며 각 집을 돌아다니며 김을 나눠주는 언니들의 모습이 선하다. ‘이런 것이 바로 공동체일까’라고 체감하는 듯 했던 그 언니들은 지금 어떻게 살고 있는지.
**<오이오감>, 2009, 여성영상집단 움 : 5개 지역과 5명의 감독이 제작한 옴니버스 영화. 이중 ‘비혼 비행’에피소드가 바로 전주의 비비 이야기이다.
2009년, 몇몇 활동가들이 제주영화제에 참석하면서 알게 된 <비혼각몽>의 존재. 그리고 언니네트워크 연대활동을 하면서 만나게 된 한 활동가가 말하기를 ‘저도 비혼각몽 멤버에요.’ 어? 근데 언니 지금 서울에서 뭐하고 계시는 거죠?
따로 사는 동거녀들, 시작은 달달하게
<비비>는 2003년 초 비혼여성들의 세미나 소모임으로 출발했다. 여성단체활동가, 공무원, 영어강사, 회사원 등 7명의 여성들이 모였다. ‘어떻게 하면 잘 먹고 잘 살지’의 문제에서 시작되어 문제를 풀기위해 책을 찾고 같이 읽고 생각을 나누었다 한다. 한 달에 한 번의 정기모임으로 체계화되면서 한 번 모일 때 맛있는 거 먹고, 한 번 놀 때 재미있게 놀자는 심정으로 돈을 모았다. 이렇게 먹고 놀고 공부하는 새 생활공동체가 되었다. 여행도 가고 명절도 함께 보내고 소소한 기념일을 챙겨주는 사이가 되었다. 그리고 같은 아파트로 하나, 둘 모여들어 둥지를 틀기 시작한다. 처음부터 목적한 적은 없지만, 2006년부터는 스스로를 ‘공동체’로 부르기 시작했다 한다.
<비혼각몽>은 제주여민회 등 여성운동을 통해 만난 7,8명의 비혼여성들로 시작하여, 2004년부터 모임을 만들었고 하나, 둘 꼬드겨(?!) 현재 40세 전후의 여성들 10여명이 몸담고 있다. 구성원들의 왕성한 활동력으로, 누군가는 서울 지역에서 여성주의 문화예술행사 기획자로, 혹은 이주여성인권운동가로, 또 누군가는 제주에서 천연염색을 연구하며 예술창작자로, 제주여민회 활동가로, 지역운동가로, 대학의 연구자로 각자의 삶을 꾸려왔다. 이렇게 서로 떨어져있는 탓에, 1년에 한 번 정도 제주에서 회동을 가지거나 함께 여행을 간다. 역시나 함께 조금씩 부은 돈으로 모임도 하고 여행도 가는 것이다. 또 늙어서 함께 살 마을을 꿈꾸며 목돈을 만들어가고 있었다.
그녀들은 반드시 같은 집에 살지 않아도 같은 마을에서 살거나, 혹은 삶의 변화를 따라 서로 떨어져있다가 다시 모이기도 하면서 서로가 탄력성 좋은 끈에 엮어있는 듯 어디서든 함께 살아가고 있다는 생각을 놓지 않았던 것이다. 공동체란 ‘나중에~’라는 시간에 맡기는 것이 아니라 바로 지금 하나, 둘 끈을 엮어가며 이루어가는 것. ‘언니 지금 서울에서 뭐하고 계시는 거죠?’ 라는 의문은 주거공동체만을 공동체로 바라본 ‘공동체 상상력’의 협소함에서 나온 것이리라.
두 모임의 평행이론, ‘계棨’
<비비>와 <비혼각몽> 두 모임 사이에 흐르는 평행이론은 바로 ‘계’에서 찾을 수 있었다. 쉽게 말하자면 일정액의 곗돈을 붓고 있었던 것이다.
어렸을 때, 평소 이상의 치장(?)을 하며 외출 준비하는 엄마는 ‘친목계’를 간다고 말했다. 한 예능프로그램에서는 ‘오 계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라는 개그송이 나왔다. 아줌마들끼리 머리뜯고 싸우는 파국의 중심에는 ‘계’가 있었던 것 같다. 내가 알고 있던 ‘계’란, 장르로 치자면 ‘블랙코미디’ 같았달까.
하지만 비혼공동체에서 ‘돈’이란 블랙코미디보다는 휴먼다큐에 가까웠다. 놀고 먹을 돈 : 이왕 계속 만날 우리들이라면 다음 만남, 다다음의 만남을 준비하자는 돈이다. 바람날 돈 : 함께 여행을 가자는 돈이다. 살림차릴 돈 : 현재, 혹은 미래에 함께 어울릴 공간을 만들자는 돈이다. 이 비혼공동체들에서 ‘계’란 각자의 쓰임 (예를 들어, 투자․자녀의 결혼자금․교육비 등)을 위한 ‘땡겨쓰기’와 ‘몰아주기’가 아니라 ‘함께 쓰기’가 목적인 것이다. 그것은 많고 적음, 풍족하고 가난함으로 따지는 종류의 돈이 아니라 ‘같이 쓰고 싶은 돈’ 이라는 점에서 이들의 동행을 가능케 하는 기반이 된다. 역시 ‘계’는 여자들의 미래인가.
자기 성장을 돕는 친구들
우리가 <비비>를 방문했을 때, 그녀들은 정말 많이 변해있었다. 조금씩 모은 돈이 쌓여 공동의 자원으로 할 수 있는 일을 상상했다. 2010년 초 아파트 근방의 건물 2층에 세를 들고 ‘여성생활문화공간 비비’를 열었다는 것이다. 이 공간은 오전10시~오후10시까지 운영하면서 소정의 공간이용료 혹은 월회비 2만원을 받고 차를 마시며 책도 읽을 수 있는(언니네트워크의 책들도 발견!!) ‘친구 집 같은 북카페’라고 볼 수 있겠다. 이 외에도 요가 강습, 영어 읽기, 작은 마을 상영관, 소설 읽기 등의 프로그램/모임이 진행되고 있었다.
다큐멘터리 이후의 큰 변화에 적잖이 놀랐다. <비비>는 결혼 계획이 없고 자기 삶에 대한 고민을 가진 직장여성들의 격려와 지지모임으로 시작되었다 하는데, 분명 어떤 ‘비혼의 씨너지’가 있었으리라.
<비비>의 막내 언니는 작년까지도 아이를 낳아 기르고 싶다는 생각에 꼭 결혼을 하리라 생각했단다. 하지만 언니들과 함께 지내다보니 이제는 ‘꼭 결혼해야겠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고 고백한다. <비비>의 또 다른 언니는 ‘더 일을 배우고 성취할 수 있는 기회가 보이지 않았다’며 14년 동안 일한 직장을 스스로 그만두고 ‘여성생활문화공간 비비’에 투신했다. 낮에 길을 돌아다니는 것 자체가 새롭고 낯선 세상이었다며 낮에 돌아다니는 사람들을 보고 ‘이 사람들 뭐지? 다 백수 아이야~?’라고 생각했다는 이야기에 모두가 빵~터졌다. ‘내가 이 나이에’ 책을 뒤져가며 <비비>홈페이지를 만들었다는 말 속에 담긴 자랑과 성취감은 나만 받은 느낌이었을까. 상상도 안 해봤던 삶의 변화를 맞고, 그 낯설음을 견뎌낼 수 있었던 데에는 <비비>의 친구들의 지지와 도움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알고보니 <비비>의 ‘비혼씨너지’란 단지 ‘결혼하지 않은 상태’를 버텨낸다거나 마치 ‘비혼 핸디캡’을 극복하려는 투쟁적 에너지가 아니었다. 여성인 한 인간으로서 자신을 발견하고 변화하는 과정, 그것을 가능케하는 친구들과 신뢰, 바로 그것이랄까.
공동체의 원칙? ‘우리’의 경계는 확장된다.
<여성생활문화공간 비비>는 지역의 여성들을 위한 공간이며 기혼, 비혼을 불문하고 이용할 수 있다고 한다. ‘비비중 누군가 결혼한다면...?’이라는 조심스러운 질문에 “우리 중 누군가 결혼한다면 그녀와 같이 더 이상 같이 살 수 없게 되는 것이 아니라 그런 상황과 변화에 맞춰 이 모임이 변하고 맞춰가게 되지 않겠냐”고 말한다. 언니들의 공동체는 관념적인 합의와 의지보다는 함께 생활을 나누어온 구체적인 관계 속에서 자연스럽게 태동한, 또 가능한 것이었고 그런 의미에서 ‘비혼원칙’ 따위는 너무도 추상적인 고민이었던 것이다. 또한 서로를 지지해주고픈 관계라면 그녀와 ‘가족’이라는 장소가 아닌 다른 네트워크와 공동체를 공유하는 것이 여전히 의미있는 일이라는 생각에서일 것이다.
<비혼각몽>의 구성원은 보다 다양하다. ‘이전에는 돈 묻어놔도 결혼하면 돈 못받고 퇴출했다~’고 했지만 이미 다양해진 구성원들의 삶과 함께 하면서 더 이상 ‘비혼이 무엇이냐’ 선긋고 대답하는 것이 재미없어졌다고 말한다. 파트너와 동거하고 있는 언니들도 있고, 이혼한 후 자신의 아이와 비혼각몽 친구와 함께 삶을 꾸리고 있는 언니도 있다. 그래서 비혼각몽의 미래는 이 파트너들과 아이들을 빼고서는 그려지지 않는다. ‘남자도 있고, 여자도 있고(많고~), 늙은이도 있고 아이들도 있는 ‘마을’로 그 상상력이 뻗어있었던 것이다.
‘선물’로 받을 수 없는, 그러나 나눌 수 있는
언니들과 만나면서 내가 가장 많이 했던 질문은 “갈등이 없었나요?”, “서로 잘 맞았나요?”따위였다. 이런 나의 질문은 공동체를 꾸리는 것의 두려움, 바로 그것에서 나온 것일 게다. 모두의 대답은 같았다. “어떻게 갈등이 없겠어요. 하지만 서로를 잘 알고 이해하기 때문에 큰 문제가 되지 않는 상태가 되었달까.”
공동체란 잘 맞는 사람, 조금 더 쿨한 사람을 눈알을 굴리며 찾아다니는 것이 그 시작이 아니라 바로 내가 현재 가진 내 옆의 사람들과의 구체적인 관계로부터 출발할 것이다. 오히려 자신의 삶에 대한 독립성과 책임감을 가지는 것, 사람에 대한 이해하고 잘 소통하는 것 등은 내가 어떻게 살 건 감당해야할 내 몫의 성숙에 관심을 가져야할 일인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꽤나 귀찮은 일, ‘나중에’ 하고 싶은 일이기도 한 것이다. 하지만 이는 누군가와의 공동체를 꾸릴 때에만 요구되는 것이 아니라 여자들이 자기 삶을 개척하는 과정 그 자체이다. 한 페미니스트 친구가 이렇게 말했던 기억이 난다. ‘혼자 살 수 있으면 누구와도 함께 살 수 있다’고.
<비비>는 관심이 있는 사람들을 충원하는 방식이 아니라 스스로 사람들을 만나 공동체를 꾸려나갈 수 있도록 지원해주는 활동을 한다. 그렇게 만들어진 것이 <비비 2기> 격인 <비요나>. <비요나>와 세미나를 함께하면서 <비비>는 일종의 ‘공동체 멘토’가 된 것이다. 간혹 ‘이미 잘 만들어진 선물을 받고 싶은 마음으로 기존의 비혼공동체에 참여하고 싶어하는 이들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공동체에 대한 나의 도둑심보를 떠올린다.
나가며...
20~30대의 비혼여성들 중 공동체에 관심이 있지만 막상 현실화하기를 주저하는 사람들과 함께 <비비>와 <비혼각몽>언니들과의 만남으로부터 얻은 지혜를 나누고 싶었다. 공동체란 당장 집을 사서 같이 살지 않아도 현재의 주어진 조건에 맞추어 상상해도 괜찮다는 것(또 바로 그러한 것), 또 공동체란 맘에 드는 사람을 찾아 꾸리는 미래적인 시도가 아니라 지금 함께 어울려 살아가는 친구들과의 관계가 이미 ‘공동체스러운 것’을 체득하고 만들어가는 과정이며 그것이 공동체의 시작이 될 수 있다는 것, 여자를 의존하도록 만드는 구조 속에서 내 몫의 성숙과 성장을 추구하는 것은 혼자 살든, 함께 살든 삶 그 자체에 필요하다는 것이다. 아! 그리고 마지막으로, 여자에게 ‘계’란 블랙코미디 이상의 가능성이 있다는 믿음을 전도한다!
[이미지출처]
1) 걸어가는 세 아이들 : http://photo.naver.com/view/2010052017444724842
2) 토끼와 공주 : 게티이미지
3) 4) 언니네트워크 <비혼유랑단>
5) 여성생활문화공간 비비 www.spaceb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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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네 채널넷(www.unninet.net) 2010년 가을특집 ‘비-혼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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